불의 유희遊戱 / 道峰 김정남
모든 것이 이기심으로 불타고 있다
노란 해가 바다안개 걷힌 바다 속으로 사라지자
불도 꺼졌다
바다가 조용해지자
동산 너머에서 어두운 달이 고개를 든다
어둠이다 어둠
못다 부른 노래가 들리며
나는 어둠이 된다
다섯 시간이 지나자
블러드문, 토끼가 죽어 흘린
핏빛 달은 맑아졌다가
개기월식이 시작되고
달은 다시 어두워졌다
잠시 후
달이 다시 밝아졌다
한숨 놓였다
해의 유희에 미친
사람들은 피를 좋아하고
피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빨간 것은 사과’인데
동쪽의 어느 나라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고
서쪽의 어느 민족은 신의 저주라 했다지 그때
희생제물은 순한 양뿐이었을까
흙과 물, 불과 바람일 뿐인 지구를 돈다던 태양은
매일 사람을 불쏘시게 삼아 하나씩 잡아먹어야 했고
동굴에 갇혀 희미한 빛만으로 사는 우리는
횃불을 알지 못한다
불의 거룩함을 알지 못한다
반역이 필요한 이유다
모든 것이 너와 나의 구별과 차별을 불쏘시개로 불타고 있기 때문에
세상과 인간이 결코 나아질 수 없는 까닭이다
모든 것이 탐욕과 증오와 망상으로 미쳐서 불타고 있다
불이 꺼지면 우리도 꺼질까
궁금해지는 눈 쌓인 거리 위
12월의 마지막 날에
*제3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