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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맹자가 전하는 사대의 윈칙

맹자가 전하는 사대의 윈칙

 

전국시대 말에 남쪽으론 초나라와 동쪽으론 제나라 사이에 낀 등(滕)이라는 아주 작은 나라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전쟁을 통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던 전국시대 후기에 그 작은 나라의 군주는 살기위해선 눈치껏 강대국의 비위를 맞춰야 했겠지요. 해서 등나라 군주가 맹자에게 제나라와 초나라 중 어디에 사대(事大)를 해야 하는지 묻는 장면이 맹자 양혜왕편에 나옵니다.

맹자서의 이 구절을 보다가 문득 러일전쟁을 전후한 구한말의 우리나라 상황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세계 패권국이었던 영국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영국의 이권에 도전하고 있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호전적인 일본을 끌어들여 은근히 러일 전쟁의 배후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정세임에도 정확한 정세를 파악할 능력도, 자주적인 안보역량도 갖추지 못하고 아관파천이다, 영관파천이다 해서 전쟁나면 도망갈 궁리만 하던 고종을 비롯한 조선의 지배층은 결국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고 맙니다.

제나라와 초나라 중 어디를 섬기고, 비위를 맞추면 소국인 우리가 살 수 있겠느냐는 등문공의 질문에 맹자는 마지못해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1. 孟子對曰 是謀非吾所能及也(맹자대왈 시모비오소능급야)

> 이 계책(謀)은 제 능력이 미치는 바가 아닙니다.

 

2. 無已 則有一焉(무이 즉우일언)

>(그래도 굳이) 그만두지 말라(無已)고 하시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3. 鑿斯池也 築斯城也 與民守之(착사지야 축사성야 여민수지)

> 해자를 파고(鑿斯池) 성을 쌓아(築斯城) 백성과 함께 지키되

4. 效死而民弗去 則是可爲也(효사이민불거 즉시가위야)

> 목숨을 바쳐(效死) (그런 각오로) 백성이 물러서지 않는다면 해볼 만합니다.

맹자는 군사 전략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허나 군주부터 백성까지 한 마음으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고자 한다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맹자는 양혜왕 편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사대(事大)와 사소(事小)에 대해 언급하면서 좋은 사대의 사례로 월왕 구천이 오(吳)나라에 고개 숙인 경우를 들고 있었습니다. 다 알다시피 월왕 구천은 그 뒤 20년간 쓸개를 핧으며(嘗膽) 국력을 길러 결국 오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맹자의 생각은 이런 듯 보입니다. 사대를 하더라도 자주적인 역량을 갖추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사대를 할 수밖에 없더라도 군주와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자주적 역량을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착실히 갖추어 나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 글귀를 보다 문득 지금 우리는 과연 이런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그림을 가지고 있는지 솔직히 좀 걱정이 됐습니다. 영관파천을 허용해 달라는 고종의 요청을 영국은 단호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미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뒷거래한 영국이었으니까요. 해서 자기들한테 하나도 이익이 없는 한국 지배층의 피신처 역할을 왜 하려고 했겠습니까? 현 북핵을 둘러싼 미중일 간의 줄다리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국의 이익에 반하면 언제든 포기할 수 있는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입니다.

아무런 주체적인 노력없이 강대국의 의지만 바라보는 사대(事大)는 그래서 위험하다는게 맹자를 통해 다시 깨닫게 됩니다.

[출처] 맹자가 전하는 사대의 윈칙|작성자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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