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다, 큰일은 무슨 / 道峰 金定南
웬만한 세상물정은 대수롭지 않고
불나서 40명이 죽었다 해도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는다
남북 간 전쟁이 나도 그럴 것 같다
시비와 애증은 일상사인데 놀랄 일 있겠나
40년 년 전부터 언젠가는 우리들의 시대가 온다던
친구가 췌장암 걸려 죽는다 해도 “때가 됐구먼”
하고 그만이다 어차피 세상은 흘러갈 뿐
‘평창인가’ 같잖은 '평양인가’ 하는 올림픽 명칭 놀음에도 “싱거운 놈들” 하면 그만이고
거실에서 들리는 동계올림픽 숨 가쁜 중계에
유투브 양자역학 공부로 이어폰을 꽂아버린다
아침에 일어나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가장 나쁜 일상사의 시작이라고 이미 말한 적이 있다
기레기들이 쓰는 칼럼이나 논설에는 '자식들 쓸 것이 그렇게도 없나, 배움이 아깝다. 시간도 아깝다. 기껏 쓰는 논조가 그거냐!'
장사꾼 시절 기자들에게 매우 자주 폭력적으로 얼토당토않게 시달려본 사람의 후발적 반감인지 피해망상적 반감인지
보름치 신문을 하루에 보는데 지나고 보니 어찌 그리 삼류소설과 거짓말이 많은지
그리 상상력이 풍부하면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되든지
토스토예프스키 발뒤꿈치 닮은 소설가가 되든지
신문을 끊어버리라 해도 얼마의 옵션이 걸려 못 끊는다니, 끌끌
이건 세상사를 꿰뚫어 본다는 건지
앉아서 구만리를 본다는 건지
죽을 때가 돼서 모든 게 심드렁해졌다는 건지
구별하기조차 어색하다
시 쓸 때가 가장 좋지
그런데 선생님은 주제에 관여하려 한다
사랑시
참여시
경구시는 가까이 가지 마라고
아쉬운 것도 없는데, 어쩌라고
세상사는 게 바람의 그림자 보듯 뻔해진다
마나님이 시가 뭐냐고 묻는다
‘따뜻한 관심’이라고 하려다 멈칫하고 모른다 했다
그러면 왜 쓰느냐고 눈을 치켜뜬다
어쩔 수 없이
치유와 개선이라 하고
따뜻한 혁명이라고도 하고
풍자와 해학과 익살이라고도 하고
사랑이라고도 했다가
그럼 시인은 뭐냐고?
친일시도 쓰다가 세상모르고 사는 사람 취급도 받고
전두환 환갑시도 쓰다가
옆에 앉은 젊은 여자사람 시인의 손도 만지작거리다가
젊은 사람에게 뺨 맞는 게 시인이라고 했다
살다보니 가장 무서운 게 곶감이 아니고 나이더라
더구나 흰머리 나이
아마 호랑이도 흰머리 나이는 안 물어갈 거다
겁이 없어진다, 주변에 죽는 사람이 자주 나오니
아쉬운 게 없다, 바랄 게 없으니 버릴 것만 남았으니
죽을 때 갖고 가는 건 없다는 대박 나는 진리를 발견한 후로
이미 지공도사가 됐는데
하늘가는 요금 내라면 버티면서 안 가면 어쩔 건데
배포가 하늘은 찌른다
죽기를 각오하고 유서를 써놨으니 누구인들 무서우랴
기적이야 한 번만 써먹으면 그만, 두세 번 써먹으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나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나
'하룻밤 햇강아지 꼬리 흔드는 소리‘의 비유보다 유치하다는 생각이 드니
‘신의 침묵에 대한 질문’이란 책을 읽고 저자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고
별이 낭만의 대상이 아닌 과학적 지식의 대상이 되어 버렸으니
옛 낭만 찾아질까
궁금해지는 설날의 자정
설날의 아침에 눈 마주친 아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당신도”
내게 무슨 복을 받을 게 남았다고
차라리
안성의 마도로스 김 선장이 세운 기원정사에 가서 피죽 먹고 붓다 얼굴만 보며 지내거나
잘 아는 석모도 보문사 준안 스님의 얼굴과 해넘이의 그림자를 보고 살다가 죽거나
포천 친구의 텐트에서 도 닦다 죽거나
인심 좋고 따뜻한 해남 제수씨 땅에 컨테이너 갖다놓고 바다와 벗 삼아 물새소리와 함께 노래 부르다 죽거나
노모 돌아가셔서 빈 집이라고 집필하라는 곳도 있고
도반 중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마련해둔 명상센터의 비워둔 집 한 칸 혜덕암도 있고
눈 많은 임실 섬진강 가 운동권 골수 조카사위와 농약 없는 쌀 먹다 죽거나
어머니는 사람 많이 죽고 죽여 한 서린 고향 영광으로는 돌아오지 마라고 당부했지만
오막살이 지을 땅은 남아 텃밭에서 해와 바다를 보며 살다가
막걸리 한 병 들고 바람의 그림자를 벗 삼아 살다가
조용히 가는 것이 복이겠거늘
쓰레기로 만들기 싫어 남겨둔 시들 아우성 치고
시인 선생님과 나눠 갖기로 한 당선 상금 약속 못 지켜 아쉽고
불가지론의 세 명제 끝 보지 못한 게 아쉽고
기어이 신은 하나여야 한다는 지인 맘 그것만은 틀렸다고 풀어주지 못한 것은 아쉽다
고향 칠산바다로 지는 해는 언제 봐도 맹골수로로 넘어가는 붉은 해를 닮아 매양 눈물지게 곱다
*제4시집 <방랑자의 노래>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