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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북한산 자락길을 물 위를 걷듯이 즐깁시다(詩山會 제411회 산행)

북한산 자락길을 물 위를 걷듯이 즐깁시다(詩山會 제411회 산행)

모이는 때와 곳 : 2021. 6. 12.(토) 10:30 전철3호선 홍제역 1번 출구

산행길 : 아주 평탄한(80%) 데크길 2시간 걷기

뒤풀이 : 홍제역 부근 목포세발낙지식당

안내자 : 위윤환

 

1.시가 있는 산행

 

막걸리 / 김승동

 

허허

그리운가, 잊어버리게,

여름날 서쪽 하늘에 잠시 왔다가는 무지개인 것을

그 고운 빛깔에 눈 멀어 상심한 이 지천인 것을

미움 말인가

따뜻한 눈길로 안아주게, 어차피 누가 가져가도 다 가져갈 사랑

좀 나눠주면 어떤가,

그렇게 아쉬운가, 놓아버리게

붙들고 있으면 하나일 뿐, 놓고 나면 전부 그대 것이 아닌가

세상의 그립고 밉고 아쉬운 것들 그게 다 무엇인가

사랑채에 달빛 드는 날

묵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잔이면 그만인 것을

 

2.산행기

시산회 410회 구름산 산행기

-일 시 : 2021.5.22(토) 10;30

-장 소 : 도덕산-구름산 둘레길

-참 석 : 8인(홍황표 김종화 이경식 기세환 서정우 김정남 이윤상 위윤환)

-동반시 : 누가 그날을 모른다 말하리(고정희)

 

구름산(237미터)...,,, 광명 사람들이 제일 즐겨 찾는 산, 나도 6년 전 쯤 자주 갔던 곳이다.

철산역에서 바로 도덕산(183미터)을 거쳐 가기로 했다. 주택가 가파른 길을 올라 어렵사리 입구를 찾아 정상을 향했다.

 

도덕산은 시내에 붙어 있어서 광명 시민들의 공원 같은 산인데, 가다 보니 도문산이라는 산봉우리가 보였다. 도문봉을 거쳐 도덕산 정상으로 접어 들었다.

 

정상의 팔각정 모양의 도덕정에서 동서남북으로 퍼져있는 광명주변을 흝어보고 단체사진도 찍었다.

 

이제 부터 쭉 내리막길, 걷기에는 최고다. 날 좋고 바람 좋고...... 도덕산 끄트머리 지점에서 점심 장소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사실 여름산속의 풀숲은 벌레가 많아 아무데나 자리를 잡을 수는 없다. 길에서 조금 떨어진 것에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폐도가 보였다. 주변이 탁 트여서 바람이 한결 시원했다. 오늘의 점심장소는 바로 여기다. 막걸리, 떡, 김밥, 순대, 골뱅이, 김밥 등등 푸짐한 메뉴다. 술잔이 돌고 떡이 돌면서, 약간의 취기가 돌자 "히히 하하 호호 ㅋㅋㅋ ㅎㅎㅎ" 조용한 산골에 우정과 사랑이 넘친다. 오늘의 기자(이경식)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그리며 동반시를 낭송했다.

 

누가 그날을 모른다 말하리 / 고정희

 

넋이여,

망월동에 잠든 넋이여

하늘이 푸르러 눈물이 나네

산꽃 들꽃 피어나니 눈물이 나네

 

누가 그날을 잊었다 말하리

누가 그날을 모른다 말하리

가슴과 가슴에서 되살아나는 넋

칼바람 세월 속에 우뚝 솟은 너

 

진달래 온 산에 붉게 물들어

그날의 피눈물 산천에 물들어

꽃울음 가슴에 문지르는 어머니

그대 이름 호명하며 눈물이 나네

 

목숨 바친 역사 뒤에 자유는 남는 것

시대는 사라져도 민주꽃 만발하리

너 떠난 길 위에 통일의 바람부니

겨레해방 봄소식 눈물이 나네

 

시를 읊다가 만감이 교차하더니 70노인의 가슴속에서 울컥 물기가 맺힌다. 벌써 31년이 흘렀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과학자들의 말을 뒤로 외면해도 세월은 시간을 구분하며 흘렀다. 그렇다면 우리도 벌써 반 이상이 칠성판에 등이 닿았다. 베이비붐 세대는 아니어도 60만 명 이상 태어났는데 우리는 아직 신원우 말고는 잃은 산우가 없음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나이 들면서 잠시 반추해본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의 대명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는 인간 앞에 놓인 극단적인 허무의 현실을 완전한 긍정으로 탈바꿈시켰다. 1943년에 발표한 <존재와 무>에서, 이유 없이 세상에 던져져 목적 없이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오히려 그 때문에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존재로 거듭 난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도구에는 나름의 본질이 있다. 예를 들면, 톱의 본질은 썰기 위한 것이다. 이런 본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실존이라는 톱을 만든다. 썰지 못하는 톱은 톱이 아니다. 도끼는 농기구이지만 전쟁의 도구로 쓸 수도 있다. 사르트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사물에서 ‘본질은 실존에 앞선다'. 즉, 용도가 도구의 실체를 앞선다. 썰어야 한다는 용도, 즉 실존이 없으면 본질인 톱이라는 도구는 만들지 않는다. 실존은 '실재 존재'의 줄임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반대다. 인간에게는 본질이 없다. 인간은 세상에 그냥 던져져 있을 뿐이다. 또한 다른 사물과 달리,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다. 이 극단적인 허무를 깨닫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펼칠 수 있다. 자신에 대해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를 본질적으로 구속하는 것은 없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짐으로써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존재이다. 유명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적당히 먹고 즐겼다. 가자 구름산 품으로. 노온정수장 옆을 돌아 인천 가는 국도를 연육교로 지나 구름산 변두리에 발을 붙였다. 바닥이 편평하니 걷기도 좋고, 햇살도 좋고, 벗도 좋고, 걷는 게 행복 그 자체였다.

 

약간의 오름길을 지나 구름산 정상으로 가는 코스를 지나쳤다. 오늘은 충분히 걸었으니 정상은 생략하고 광명보건소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드디어 보건소 앞 큰 길에 도착했다. 대강 1만7천보쯤 걸었으므로 충분한 운동량이다.

 

버스를 타고 광명경찰소 부근에서 하차, 지난번 수리산 산행 때처럼 여기 저기 식당을 순방하다가 서민용 횟집서 뒤풀이를 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저렴하다. 소맥으로 충분히 피로를 풀고 다음을 기약했다.

 

고맙네, 친구들. 건강을 유지해야 더 자주 만나지 않겠는가. 다시 만날 때까지 잘들 계시게.

 

이경식 올림

 

3.오르는 산

 

이석離席, 移席 / 박신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선언한 뒤

중력을 벗어던지고 뛰어내린다

운석들이 충돌한다

 

머릿속에선 끊이지 않는 빗소리

아플 때마다 하염없이

폭설은 밤바다에 투신한다

 

돌은 진다 닿을 데 없이 떨어진다

죽음의 인파, 더러운 소음 속에

놓치고 헤어진 혈육 같은

 

벗어났다는 안도는 금세 이탈했다는 불안에 녹는다

 

돌고 도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멈추면 비로소 우주가 공전한다

 

어느 한자가 맞을까 하며 집중하여 생각하다가 앞의 한자가 맞는 것으로 판단한다. 틀린들 어쩌랴. 70이며 거의 용서되며, 용서한다. 거기에다 나처럼 마스트를 쓴 백발노인이면 지하철은 좌석도 공짜이며, 버스도 좌석은 공짜다. 늙고 병든 몸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5년 전 사고의 후유증으로 한편으로는 사는 게 괴롭다. 하지만 마누라가 혼자고 손녀가 크고 있으니 적어도 몇 년은 더 살아야 한다. 거기에 맞춰 용돈을 주며 운동을 시켜주는 친구가 있으니 아직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접었다. 신경이 나아가니 운동량은 활발해지나 통증은 반비례로 민감해진다. 묘한 이치다. 5년의 치료과정을 생각해본다. 딸들이 좋다는 것은 갖다 바치니 약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침술과 운동요법, 의사가 권유한 재활법 등은 효과가 너무 미미해서 내린 결론은 걷는 것이 가장 좋다고 스스로 판정을 내렸다. 글 쓰는 것을 새벽과 저녁으로 줄이고 낮에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그런 이유로 시산회의 일원인 것이 여러 면에서 훌륭한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산우들이여 종화처럼 꾸준하게 걷자. 그는 훌륭한 시금석이자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종화, 지화자 좋네.

 

4.산행기

5년 전에 불교신문 신춘문예 공모에 손을 넣었다가 다쳐서 크게 아팠다. 목적은 베체트 병과 쇼그렌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시 선생님과 상금을 반으로 나누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마음을 접어 손을 뻗었다. 상금이 많아 선생님의 치료에 도움이 되려고 했다. 당선작을 보고 선생은 역시 문학계의 병폐는 지독하게 깊다며, 나의 문체는 대중성이 떨어지지만 그것은 드문 매력이니 함부로 문체를 바꾸지 말고, 다시는 응모하지 마라고 위로했다. 그후 잊었다가 카카오다음 계열의 브런치 작가에 응모했다가 낙방했으나 위로는 그쪽에서 받았다. 써놓은 글과 시가 산처럼 쌓았어도 꿰어야 보배는 아니어도 작은 담주라도 되겠다는 데에 마음이 멈첬다. 손녀는 할아버지가 만만해서 내 것은 모두 자기 것이란다. 의외로 소유 개념이 남다르다. 그로 인해 어린이집에서도 분란이 조금 심한 듯하다.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남은 생을 거기에 바치겠다.

 

꾸준히 동반시를 배급해주는 형채 산우에게 모두 감사드리자. 좋은 시다. 늘 웃는 윤환이가 엄숙하게(?) 낭송하기 바란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 김시천(박형채 배급)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소쩍새 울음 따라 마냥 걷다가

앞산 풀숲에

꽃이슬 되어 눕지요

새벽하늘 별 하나

바라보지요

여기서 거기까지

그리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패랭이꽃 두어 송이

피어 있지요

그대 있는 곳

그리 멀지도 않은 곳

손 내밀면 지척인 곳

그대 머물다 간

내 마음 속

꽃자리

 

2021. 6. 12.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