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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도봉산 시산제에 참가합시다(詩山會 제455회 산행)

도봉산 시산제에 참가합시다(詩山會 제455회 산행)

때 : 2023. 3. 4.(토) 9시 30분

곳 : 도봉산 광륜사 뒤 운동장

길라잡이 : 이원무

준비물 : 산악회에서 떡과 돼기고기를 공급하므로 주류는 각1병

 

1.시로 여는 산행

 

도둑놈풀의 도깨비바늘에 대한 의심-숲 속의 들꽃/비밀 / 도봉 김정남
     
대중목욕탕 집 남자는 매일 위악의 그림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섬찟했다가 
어느 새 반가워졌다 
자신이 숨겨놓은 것은 선하다고 시작했지만 
위선의 비밀 
위악의 어리석음 
외장하드 속의 은밀함 
은행금고 속에 감추어둔 비밀통장 
들과 다를 바 없다
     
한시적으로 참다못해 터져 나온 목 가운데 검은 줄 
똥물로 흘러서 바다로 가거나 인적 드문 산에 묻고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는 뱀의 소리는 더 의뭉해지고 
용으로 솟구치면 차라리 낫지 
     
은밀한 비밀은

아름다워도 애처롭고 외로운 들꽃 보려고 
들풀 숲 헤매다가

마주 선

서양민들레 개망초 민들레 토끼풀 쑥부쟁이 털여귀 닭의장풀 벼룩이자리 뚜겅덩쿨 광대수염 별꽃 고마리 바다나물꽃 참취 털여귀 가는범꼬리 비짜루국화 개불알풀 왕고들빼기 애기똥풀 고마리 오이꽃 가막사리 강활꽃 송엽국

알고 보니 모두 너도바람꽃

밤에 피는 별꽃 카시오페아 오리온 전갈 쌍둥이 물병 처녀 사자 황소 양 고래물고기

틈새에서
도둑놈풀의 도깨비바늘과 도꼬마리 묻혀와 
부치지 못한 편지로 남아/고서
겨울바람이 되어 가슴을 휘젓는다
     
비밀과 실수는 삶의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 
몸의 상처는 언젠가는 아물지만 마음의 얼룩은 쉽게 아물지 않고 
기억 저편 깊은 곳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며
죽어도/죽도록 허공을 떠돈다 
 
목욕탕 집 남자는
마치 밤도둑과 소년의 자위를 닮아/처럼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고 
대중탕에 가지 않는다

 

-제5시집에 내려고 모아둔 시 중에서 뽑아든다. 뭐가 그토록 못마땅한지 이런 미완성시가 수두룩하다. 마치 미완성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심정을 알면 이미 시집을 냈게! 이러다 또 해를 넘기는 것은 아닐까, 마뜩잖다. 이럴 때 안타까움을 넘어 슬프다고 해야 할까, 친구여.

<도봉별곡>

 

2. 산행기

 시산회 454회 ‘남한산성’ 산행기<2023,02.26(일)> / 김종화

◈ 산행일/집결장소 : 2023년 2월 26일(일) / 8호선 산성역 1번출구 (10시 30분)

◈ 참석자 : 10명 (삼모, 종화, 진오, 기인, 정균, 재홍, 일정, 영훈, 광일, 양기)

◈ 산행코스 : 산성역-산성폭포-조망쉼터-영춘산입구-불망비-남한산성(남문)-비석숲-버스종점-뒤풀이장소-남한산성(남문)-덕운사-영도사-약사사-맨발지압장-남한산성관리소-을지대학교-남한산성입구역-집
◈ 동반시 :  '우수(雨水)' / 이종영 (박형채 산우 추천>

◈ 뒤풀이 :  '닭볶음탕', '해물파전'에 소·맥주와 막걸리 / '大長金' <남한산성면  산성리 178. (031) 747-3737>

 

시산회 454회 산행은 성남누비길(1구간)의 일부인 ‘남한산성둘레길’을 산책하였다. 산행에 참석한 산우들은 10명으로 금년 들어서 적당한 인원이었다. 금년도 시산회(詩山會)의 산행은 좋은 둘레길을 선택하여 항상 즐거웠다,

 

산행의 들머리는 복정역이다. 시산회에 가입, 처음으로 참석한 정균 산우가 보인다. 남한산성둘레길은 산성역에서 출발, 산성폭포를 지나서 항상 휴식터인 조망쉼터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산우들은 배낭에 준비한 간식에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고, 오늘의 동반시<우수(雨水)' / 이종영 시인)는 안내를 맡은 내가 낭송하였다.

 

'우수(雨水)' / 이종영

 

선암사 혜천당 옆에

수백년 묵은 뒷간 하나 있습니다

 

거기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문 틈새 이마 위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木漁 흔들어 깨우고 가는

청솔 바람소리 보입니다

 

부스럭 부스럭 누군가 밑 닦는 소리 들리는데

눈 밝은 동박새가

매화 등걸 우듬지에 앉아

두리번 두리번 뭐라고 짖어댑니다

 

천년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고

새로운 천년이 무섭게 밀려오는지

그 울음소리 대숲 하늘 한 폭 찢어놓고

앞산머리 훠이 날아갑니다

 

하릴없이 대나무 대롱 끝에 입술을 대고

한 모금 찬물을 삼키다가 옳거니

매화꽃 봉오리 움트는 소리

겨울 산그늘 얼음꽃 깨치고

봄 햇살 걸어오는 것 보았습니다

 

이종영 시인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문학공간에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한국공간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공간마당'의 동인이다.

 

지난 일요일인 2월 19일이 우수(雨水)였다. “우수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하는 것처럼 24절기의 두 번째 절기 우수는 추위가 누그러지고 봄기운이 뚜렷해지면서 나무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트기 시작하는 절기이다.

 

양력 3월에 꽃샘추위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우수 지나면 추위가 누그러지고,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나무에 물기가 오르고 새싹이 돗는다. 꽃샘추위가 찾아올 때면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을 쓰곤 한다. ‘춘래불사춘’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虬)의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온다.

 

꽃피는 초봄 순천 쪽에 가면 선암사에 꼭 들러 봐야겠다. 선암사에 들리면 뒷간을 찾아 해우소(뒷간)에 쭈그리고 앉아 문 틈새 사이로 목어(木魚) 흔들어 깨우고 가는 바람소리와 ‘끙’하는 소리에 등 굽은 소나무에 앉은 동박새가 놀라 우짖는 소리를 귀 기울어서 들어 봐야겠다.

 

동반시를 낭송하고, 불망비(不忘碑)에 오르니 성남누비길1구간 종점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금번 산행은 오르막길을 걸은 후 산행에 약한 친구와 같이 가기 위해 몇 군데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뒤풀이 시간을 감안, 장소를 협의, 결정하여 미리 예약을 하였다. 산성역에서 출발, 남한산성 남문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오르면 1시간 30분이면 올라갈 수 있는데, 남문에 도착시간이 12시 50분인걸 보니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오늘의 둘레길 종점인 남한산성(남문)에 도착, 남한산성 역사테마길 1코스(‘장수의 길’)를 걷고 싶었으나 산우들의 반대로 예약을 한 뒤풀이 장소를 찾아갔다. 남한산성내의 유명한 식당이 ‘대금장(大金長)’이다. 정 총장님은 회비를 감안, 조금 비싼 오리능이백숙을 한사코 반대하며, 낙지닭볶음탕(2마리)으로 예약을 하였었다.

 

대금장의 위치는 광주시항일운동기념탑과 지수당에서 얼마 안 되는 가까운 곳으로 개원사로 가는 산 입구에 있다. 주요메뉴는 한방낙지백숙, 낙지두부전골, 낙지보쌈 전문집으로 오리능이백숙, 낙지닭볶음탕, 해신탕 등도 사전에 주문을 받아 운영을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산우들은 낙지닭볶음탕과 해물파전에 소·맥주, 막걸리를 한 잔씩 하였으며, 하산은 남한산성(남문)에서부터 덕운사-영도사-약사사-맨발지압장-남한산성공원-을지대학교-남한산성입구역까지 걷기 운동을 하고 산우들과 헤어졌다. 시산회 산우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다음 산행 때에도 많은 참석을 기대한다. 모다 행복(幸福)하시길...

2023년 2월 27일(월)  김종화 씀.

 

3.오르는 산

작년에는 관악산에서 시산제를 치렀는데 항상 나오는 불만은 이제는 고령이 된 선배들이 늘어나 관악산 산행은 무척 부담스러워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이다. 집행부는 자주 까먹고는 ‘아차’ 한다는 것이다. 도봉산은 코스가 다양해서 모든 연령대의 선후배가 산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약수터가 많고 수량이 풍부하여 물 거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국립공원이다보니 시설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잘 해결이 되었다. 전에는 까다로운 여직원이 있었는데 전근을 간 모양이다.

 

철학이야기 2

 

시를 쓰기 위해서는 다양하게 공부를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특히 종교와 철학,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철학, 과학과 종교, 철학과 종교에 있어서 논의의 중심에는 신의 존재와 권능이 그 중심핵에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다만 그 논의를 거듭하면서 깊이 들어갈수록, 과학의 깊은 곳에 도달할수록, 철학적 명상의 궁극에 들어갈수록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다. 특히 과학의 미시적 접근이나 거시적 접근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분량의 완성이다. 그런데 종교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자료인 성경의 분량은 싱거울 만큼 작다.

 

세 가지 부문의 관계에 있어 과학이 가장 힘이 세고 종교는 항상 수세에 몰리는 입장에 선다.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보면 ‘뉴턴 이전까지의 과학자는 철학자이다’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철학과 과학의 관계는 밀접한 정도를 지나 같은 부류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종교는 극단적 대립의 관계에 있었다. 신은 논리적으로 추론되는 것도 아니고, 종교 외적인 경험의 대상으로부터 추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신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존적이며 무한정적이며 절대적인 활동성을 가진 원초적인 사태 그 자체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신의 본질 존재론’이다.

 

이런 신에 대하여 인간들은 소위 본질적 대상을 지향하는 종교적 행위를 한다. 물론 이런 종교적 행위는 지향하는 대상세계의 실재성을 긍정할 때에만 그런 행위의 실존이 이해 가능해진다. 철학자 쉘러는 이런 종교적 행위의 특성을 이렇게 제시한다. 첫째는 이 행위 속에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유한적 사물이 세계의 이념에로 총괄되고, 둘째 그 지향작용에 있어서 이 세계를 초월하며, 셋째 종교적 행위는 오로지 인간에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신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

 

종교적 행위와 신의 현존을 대응시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종교적 행위의 현존으로부터 신의 현존이 추리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하여 쉘러는 그것은 지나치게 편협하고 폐쇄적인경험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는 오류라고 반박하고, 또 근원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제시되는 것이지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런데 쉘러의 이런 종교철학적 입장들은 여러 측면에서 더 검증 되어야 할 요소들이 남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토마스주의자들에 의해서 부정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교조주의적 그림자를 반성하게 하는 계기를 준다. 신토마스주의자들은 종교의 신을 형이상학적인 방법으로 인식하고 논증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채택한 형이상학으로 특정한 교리나 신앙을 필연적으로 교조화하는 오류를 드러낸다. 그 결과 사태 자체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내린다. 신은 그 자체로서 드러나는 것이지, 다른 그 무엇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쉘러는 J.허센의 표현을 따르면, “한편으로는 종교의 자립성을 절대적으로 고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상학의 독자적 권리도 옹호하는 공헌을 하였다. 그리하여 종교적 초월자에로 나아가는 지향을 매우 조심스럽게 증시(Nachweis)하는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종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종교인의 입장에서 벽을 느낀다는 것을 많은 자료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과학은 세상의 모든 것에게 논리실증주의의 방식으로 증명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의 존재는 그러한 방식으로는 절대 증명 불가능하다. 과학은 그렇다면 창조론과 같은 유사과학으로 자신에게 접근하지 마라고 한다. 종교는 모든 존재에게 신의 존재를 덧씌우려고 한다는 점에 종교의 딜레마가 있다. 과학에게 신의 존재는 무시할 수 있는 허황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종교에게 형여 같은 형이상학의 입장으로 철학을 통하여 과학에게 접근하지 마라고 경고한다.

 

철학과 종교는 합심하여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삶이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신념을 무너뜨리는데 집중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세계와 나에 대한 관념은 그야말로 잘못된 오류이며 무지 그 자체라는 것을 철학과 종교는 분명하게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자연적인 삶을 부정하게 하고 거기서부터 탈출시키는 방법론에 있어서 철학과 종교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철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은 의심하는 행위에 있다. 서양 철학의 기원이 된다고 하는 소크라테스는 인간이 실제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철학을 수립했다. 즉 네가 알고 있고, 믿고 있고, 행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근거 없고 편견이고 무지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일이 철학이었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주어진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일에 그 목표가 있었다.

종교와 다르게 의심에서 출발한 철학은 끝까지 가장 가치 있고 진정한 삶이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아니 철학은 본질적으로 그런 확실한 삶의 진리를 인간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철학은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주관적인 것이며 상대적인 것일 뿐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철학은 불가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인간의 한계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무지를 당당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지혜이다.

 

반면에 종교는 가장 가치 있고 진정한 삶은 바로 이러 저러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데서 출발한다. 기독교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진리를 그대로 믿으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한 신의 계시로 주어진 것이라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고 가르친다.

 

철학의 가르침이 인간적이고 이성적이라면, 종교의 교리는 반인간적이고 초월적인 신비인 것이다. 철학은 종교와는 명백하게 자신의 입장을 모두에게 적용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도 모두에게 진실의 길을 가르쳐 줄 뿐 그곳으로 몰아가는 입장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종교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과학에서 공간의 상징적 대표인 블랙홀과 관련하여 생각하게 되는 시간의 역사에서 만나는 철학과 종교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신의 존재 문제, 창조론의 과학적 해석은 우리를 안타까운 정도를 넘어 슬프게 한다는 것이다. 기어코 창조론을 굽히지 않는 유일신적 사고의 불합리한 고집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빅뱅과 블랙홀 같은 거대 담론의 당사자 앞에서 우리가 과연 어떤 심장을 가지고 신의 존재를 주장할까, 인간의 뻔뻔함은 항상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양자역학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궁극적 미시를 유신론자들은 어떤 이론으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인가.

 

*蛇足 : 아이히만의 평범한 성격에서 나온 아우슈비츠의 학살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종교 전쟁과 민족전쟁에서 등장하는 민족말살, 곧 인종청소 악행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아이히만이 저지른 아우슈비츠의 학살 뒤에는 평범한 성격이 저지른 행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에 무한한 슬픔을 느낀다.

 

내가 기쁘려면 먼저 남은 기쁘게 하라 내가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나를 대접하라 예수의 황금률.

 

4.동반시

시인들은 이해인의 시를 시적 기교가 없는 서정적 묘사의 시라 하여 시의 반열에 넣어주지 않는다고 배웠다. 시 선생은 자신도 배웠다며 사랑의 몽유자 손종일의 허시사랑과 용혜인의 사랑시와 이해인의 서정적 기도문 같은 시를 시로 쳐주지 않는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용혜인과 이해인은은 기독교인이라고 했던가? 물론 억울할 것이다. 불교적 색채가 들어간 것은 인정해주면서 기독교적 생채가 들어간 것은 경원시한다는 점을 살펴보면, 불교 시는 시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지만 대개의 기독교 시는 시와 기도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경계가 모호하므로 억울해 하지 않아야 한다. 그 흔한 직유법도 없으므로 시적 기교가 없는 시는 시쳇말로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앙꼬 없는 찐빵이다. 이런 류의 시를 시라고 하지 않는다. 여태 이해인의 시를 동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시라 믿는다. 앞으로도 이런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산우들은 이해인의 시를 사랑한다. 시인의 직관적 낭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박형채 추천 배급)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 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2023. 3. 4.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의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