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월미도월미공원(월미산)으로 추억 여행갑니다(詩山會 제456회 산행)
때 : 2023. 3. 26(일) 10 : 30
곳 : 전철 인천역 1번 출구
길라잡이 : 위윤환
뒤풀이 : 대창반점(032-772-0937)
1.시가 있는 산행
봄날은 간다 / 기형도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 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 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 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 들어온 것들의 인사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몇 번인가 아이를 지울 때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주르르 눈물을 흘릴 뿐
끌어안은 무릎 사이에서
추억은 내용물 없이 떠오르고
소읍小邑은 무서우리 만치 고요하다, 누구일까
세숫대야 속에 삶은 달걀처럼 잠긴 얼굴은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 속에서 구겨지는데
몇 개의 언덕을 넘어야 저 흙먼지들은
굳은 땅 속으로 하나둘 섞여들는지
ㅡ이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여러 안쓰러움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작은딸의 작은딸을 보기 위해 띠를 매고 안아서 잠을 재울 때, 부르는 노래 중에 하나가 옛노래 ‘봄날은 간다’이다. ‘섬집 아기’로 시작하여 ‘그집앞’을 지나 ‘학교길’에 접어들고, ‘반달’을 보면서 그 노래에 접어들면 이윽고 손녀는 고개를 내 가슴에 대고 숨을 고른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애를 안으면 고관절 부분이 아프지만 아침에 큰손녀를 유치원에 보내고, 재활을 위해 헬스와 수영을 하고 오면 작은 손녀의 몸무게를 견딜 만하다. 베이비시터를 들여올 것을 권했지만 아내와 작은딸이 반대해서 늙은 할미와 할아비가 두 손녀를 돌봐야 한다. 어찌 보면 나름대로 보람 있는 날들의 연속이다. 남은 시간은 저녁 이후와 새벽으로, 이때 집필하며 지낸다. 시집을 4권까지 내고서 진이 빠졌는지 5집을 내기 위해 책상머리에 앉으면 자주 해찰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책을 내는 사람들에게 간혹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니 조금 안심하고 있다. 오래 유지하던 문체의 습관을 바꾸면 뇌신경의 일정 부분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겠다 싶으나 현재는 무척 곤혹스럽다.
4집을 낸 후 새로운 방향의 시를 써보려고 3년 동안 과학 특히 뇌과학과 우주물리학을 포함한 물리학 공부를 해왔다. 그중 물리학은 범위가 넓은데다 어려워서 더 이상 공부하는 것은 끝 모를 한계에 도전하는 짓이라 생각하여 3년을 채우고서야, 시집을 내려고 책상머리에 앉았다. 시집 한 권을 내는데 50~80편의 시가 필요한데 준비해온 시는 300편이 조금 넘는다. 그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하는 중인데 왜 이리 진도를 내지 못하는지 답답해서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시의 방향과 수준에 자신감이 없다는 점에 가장 고심을 하고 있다. 1~4집보다 나아야 한다는 점은 특히 고려하고 있다고 해도 난산도 이런 난산을 겪는다면 어느 누가 책을 집필하겠는가.
6개월 전에 재활을 위해 의사의 권고로 수영을 시작했다. 물론 바닷가에서 자라 물에 뜨는 법은 알고 시작했지만 그간 가졌던 영법은 모두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했는데 수영 선생은 나같이 흔히 저수지 수영 학생을 가르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오래 유지하던 오랜 버릇을 몽땅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영을 집중해서 배우는 과정인데 수술 후 목을 움직일 수 있는 각도가 남보다 작아서 호흡법을 익숙하게 구사해야 하는 영법을 배우기가 무척 힘들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서 25미터를 무호흡으로 가는 영법을 터득하고 있다. 7번 시도해서 모두 성공했다. 이것을 익숙하도록 혼자 시도하고 있는데 새로운 도전은 항상 즐겁지 아니 한가.
[도봉별곡]
2.산행기
◈ 산행일/집결장소 : 2023년 3월 4일(토) / 도봉산역 1번출구 (9시 10분)
◈ 참석자 : 12명 (갑무, 세환, 삼모, 정남, 종화, 진석, 진오, 원무, 윤상, 재웅, 일정, 양기)
◈ 산행코스 : 도봉산역-만남의장소-광륜사-재경광고총산악회(시산제)-문사동계곡-<원대복귀>-뒤풀이장소-도봉산역-집
◈ 동반시 :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박형채 산우 추천)
◈ 뒤풀이 : '오리훈제'에 소·맥주와 막걸리 / '옛골토성' <도봉산역 큰길 건너편, (02) 955-5667>
2023년 3월 4일(토) 9시 10분, '詩山會' 산우들은 '재경광고산악회' 동창들과 광륜사 뒷편에서 '始山祭'를 지냈다. 그곳에는 재경총산악회 동문들 280여 명이 모였다. 시산제를 끝내고, 시루떡과 돼지머리수육에 선물(양말)까지 제공을 받았다.
오늘 도봉계곡의 '문사동(問師洞)'계곡을 오르며 도봉산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물이 풍부하여 마실 물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산 중에서 규모에 비해 코스마다 식수를 얻을 수 있으니 가장 식수터가 많은 곳이다.
도봉계곡을 따라 가는데 오랜 가뭄에 여간해서 마르지 않는 계곡의 물이 군데군데 말라있는 것을 보면서 가뭄이 오래 가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마당바위에 가기 전에 만나는 ‘작은마당바위’에서 간식을 먹고 동반시를 낭송했다.
요즘 산의 낮은 곳에 오르니 이동거리와 소요시간이 짧아서 별도의 먹을거리를 준비할 필요가 없게 되어 오랜 음식 산행이 사라졌음은 무척 아쉽다.
'문사동(問師洞)'은 매년 여름철 날씨가 무더울 때 계곡에서 물이 많이 흘러 제법 많이 찾아간 곳이다. 옛날에 문사들이 스승을 모시고 찾아와 문답을 주고받았다는 곳이다. '문사동' 바위에서 단체사진과 개인별 증명사진을 촬영하였다. 뒤풀이는 '옛골토성'에서 '훈제오리'를 안주로 하여 소·맥주와 막걸리를 맛있게 마시고, 도봉산역에서 산우들과 헤어졌다. 건강을 위해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시길 바란다.
※ 동반시
"봄이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결움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3.오르는 산
인천 월미도는 우리 젊은 시절 멀지만 데이트를 즐겼던 코스 중 하나이므로 감회가 새로울 산우가 분명 있으렷다.
대학과 직장을 다니던 내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매주 토요일 테니스를 마치고 맥주를 마셔도 힘이 남으면 명동으로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광화문 재개발을 시작하기 전 광교의 유정집에서 매운 낙지볶음을 안주로 막걸리의 아류인 유정주를 마시고 나면 맥주 생각이 났다. 김정호가 통키타를 치며 노래하던 ‘타임’에 가서 연주를 듣고 그와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던 즐거움은 주말에 자주 일어났던 사건(?)이다. 명동 오비스 캐빈(OB’s Cabin) 3층에 가면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을 들을 수 있었으며 그의 춤사위는 섹시하면서도 우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숙의 율동을 곁들인 노래를 들으면서 날씬한 몸매를 감상하는 즐거움, 윤시내의 ‘열애’는 사내의 마음을 열뜨게 했다.
어머님이 사내는 남에게 얻어먹지 않아야 한다고 해서 주시는 용돈이 풍족해 을지로 골뱅이 골목도 자주 갔다. 하숙집 누나들이 그토록 오비스 캐빈을 가고 싶어 했으며, 광주에 사는 그 누나의 친구 중 ‘연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쁘고 날씬한 누나가 올라오면 어찌 조르는지 명동 쪽에 가서 맥주를 마셔야 했다. 세 살의 나이 차가 났지만, 나의 신부감을 고르는데 무척 까다로운 큰누님이 안 계셨으면, 그 누나의 더욱 친해져 정분이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산에 올랐다. 강북의 학교 근처에 하숙을 했으니 가까운 산 도봉산,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에 자주 올랐다. 직장에 다니던 때 토요일에 설악산 가는 일정을 잡으면 테니스 대신 설악산에 올랐으니 나중에 설악산 지도가 손바닥 손금 보듯 익숙해졌다. 그 손금을 늙어 70이 넘어서도 써먹었으니 젊은 날의 기억은 오래간다는 뇌과학자의 말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돌아보면 작년 겨울 돌아가신 큰누님이 서울에 계시지 않았으면 아마 결혼이 무척 늦어졌을 것이다. 내 삶의 여정에서 유난히 갈림길이 자주 나타났으므로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철학 이야기 3
요즘 철학의 관점에서 보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잠시 언급한다.
1.신의 역사
원시 종교는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이 잘 알려져 있으며 신의 모습도 이에 따라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오래전 고대에는 인간이 언어를 습득하며 스스로들을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로 단정지을 때 그 당시 이해할 수 없던 현상들을 통틀어, 자신들 이상의 존재에 의한 간섭 또는 가호로 여기기 위하여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때만 해도 신은 현재의 인간형이 아닌 동물이나 괴물의 형상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 외에도 조상을 기리는 의미에서 조상신이라 칭하며 신격화시키거나 사람이 버틸 수 없는 자연재해 등을 신격화하는 등, 사람이 납득할 수 없거나 예절을 표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신을 속된 말로 양산하였다. 기본적으로 고대신앙은 다신론적인 성향이 태반이었다.
단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세력이나 국가가 겨룰 경우 정치적인 의미에서라도 패배한 국가에게 승리한 국가의 신앙이 강요당하며 이 과정에서 신의 강약 등이 분류되며 이런 신들을 통제하거나 다스리는 주신(主神)이라는 존재가 생겨났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에 조로아스터교가 생겨나는데, 이 종교는 선신과 악신으로 나뉘는 이신론(二神論)을 주장하며 나머지 모든 신을 거짓 신, 혹은 아후라 마즈다의 부하로서 신격을 하사받은 존재로 단정지었다.
이렇게 최소 몇 명 최대 수십 명 이상에 이르는 신이 조로아스터교를 시작으로 제대로 된 신은 소수로 축약되며 그 외는 이런 소수의 신의 부하인 존재로 정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표적으로 야훼를 믿는 유대교와 같은 유일신 사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의하면 모세 때문에 야훼라는 신만을 믿기로 계약을 맺는다. 고고학적으로든 모세오경상의 묘사로든, 초기 이스라엘 왕국은 일신교 신앙과 고대 근동의 다신교 문화가 느슨하게 병존했으나 후대로 갈수록, 특히 바빌론 유수(幽囚) 등의 사건을 거치며 더 엄밀한 일신교 신앙이 자리 잡게 된다. 또한 바빌론 유배 이후로는 관대한 다문화 정책을 펼친 아케메네스 왕조, 다시 강압적인 박해를 가한 셀레우코스 왕조 등의 치하를 거치며 이들과 교류하면서도 일신교 신앙이 고도화된다. 이렇게 엄밀화되어가는 일신교 신앙은 예수의 그리스도교 창설로 이어진다. 또한 이후 무함마드도 영향을 받아 이슬람교를 만들었다. 그리스도교는 유럽의 대세가 되고, 이슬람교는 북아프리카부터 서남아시아를 지나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대세가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른 일신교 신앙의 엄밀화는 성경 내부의 텍스트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예를 들어 탈출기 2장 24-25절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살펴보시고 그 처지를 알게 되셨다"라고 서술함으로써, 마치 그 이전에는 하느님이 계약을 기억하지 못했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처지를 몰랐던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밖에도 대홍수 이야기에서 노아와 한 약속 역시,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창세 8,21-22)"라는 서술을 통해 하느님이 '후회'를 하는듯한 인상을 준다. 즉 전체적으로 모세오경에서 서술되는 야훼 신앙은, 유일신 신앙으로 묘사되면서도 고대 근동의 다신교적 묘사도 병존하는 것이다. 때문에 유일신 신앙이라기에는 그 서술이 상당히 소박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작성 시기가 후기로 분류된 것들은 이러한 느슨하고 소박한 유일신 신앙이 훨씬 더 엄밀화되고 체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신교적 뉘앙스를 줄 수 있는 서술은 줄어들어간다.
특히 헬레니즘과의 교류는 철학적으로 구약의 서술에 영향을 주었다. 물론 종교와 철학이 엄밀하게 구분되는 시대는 아니였기에 그리스 철학은 유대교의 '경쟁자'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마치 인도 문화권에서 나온 종교인 대승불교가 중국 철학과 경쟁하며 발전하였듯이,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 발전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면모는 그리스도교로 이어지는데, 이를테면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의 모습(μορφη, forma)을 지녔지만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모습(μορφη, forma)을 취했다는 필리피서 2장의 서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적지 않은 그리스-로마 철학자들 역시도 그리스도교의 경쟁자로 여겨졌지만, 이러한 논쟁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그들의 유일신 신앙을 철학적으로 설명하게 되면서 오히려 유일신 신앙의 체계화에 본의 아니게 기여하게 된다.
2.과학과 철학, 종교의 관계
다음으로 미룬다.
4.동반시
마음에 드는 시를 추천해준 형채 산우에게 감사를 올린다.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사랑에 대해 간결하면서 쉬운 어조를 유지하고서는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간다. 곽효환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남은 사랑을 끝내야 할 때 / 곽효환
시린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많은 날들까지
멈추지 않은 눈물과
더는 흐르지 않을 눈물 사이에서
내가 배운 것은
참는 것
견디는 것
기다리는 것
침묵하는 것
무심해지는 것
괜찮아, 라고 말하지 않는 것
괜찮아질 거야, 라고 믿지 않는 것
그렇게 다시 그렇게
막막한 가슴에 슬픔을 재우고
돌이 되는 것 그리고
힘들게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이고
남은 사랑을 접는 것
단호하게 그렇게 끝내는 것
2023. 3. 26.
시를 사랑하는 산사람들이 모인 詩山會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