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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묵조선. 선

원지, 손님을 맞다.성재헌 /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 원지, 손님을 맞다. 성재헌 /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 ​ ​ - 공空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배 ​ 오다 말다를 반복하던 장맛비가 그치자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답답한 땅속에서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한바탕 환골탈태의 산고까지 치렀으니, 환희의 찬가를 부르며 동네방네 유난을 떨 만도 하다. 그 사정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마감을 코앞에 둔 내 사정이 급하니, 매미의 기쁨도 나에겐 또 하나의 짜증거리일 뿐이다. 게으름 떨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책상에 앉아 ‘송고승전’과 ‘전등록’을 뒤졌다. ​ 석원지釋圓智, 그의 속성은 장張씨이고, 예장豫章 해혼海昏 사람이다. 머리를 땋은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열반涅槃 화상께 참례하고 몸소 시중을 들었다. 이윽고 계를 받게 되자 선문禪門을.. 더보기
유관, 눈앞의 길을 가르쳐 주다.성재헌 /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 유관, 눈앞의 길을 가르쳐 주다. 성재헌 /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 ​ ​ - ‘아我’ 집착하면 도道는 십만팔천리 줄행랑 ​ “도(道)를 아십니까?” 종로 3가에서 불현듯 한 청년이 길을 막고 물었다. 그가 아무나 붙들고 도를 물을 만큼 궁금증이 턱까지 차오른 자도 아니고, 곪아터진 고뇌로 괴로워하며 “누구라도 날 좀 살려주시오”라고 아우성치는 자도 아니란 건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아는 바였다. 해서 가던 길이나 재촉하고 내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무척이나 바쁜 사람처럼 바닥만 쳐다보고 서너 발짝 종종걸음을 치면 대부분 포기하고 돌아서기 마련인데, 이 사람이 또 물건이다. 범죄자를 쫓는 형사처럼 달려오더니 아예 두 팔을 벌리고 길을 막아서는 거였다. “저기, 잠깐만요. 도를 아십니까.. 더보기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지혜숭산 행원 대선사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지혜 숭산 행원 대선사 ​ ​ 문>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서민들의 삶이 힘겹기만 합니다. 그러나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에 아랑곳없이 정쟁에 몰입하고 있는 듯한 양상입니다. 국민들이 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요? ​ 답> 화禍와 복福은 스스로 받고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니 고난 중에도 마음을 비우는 사람은 평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이라고 다 좋은가요.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도 있는데 복도 너무 많으면 복 받느라 걱정이 많아집니다. ​ 그러니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 제 분수를 알아 욕심을 내려놓고 쉴 것이며 내 앞에 닥친 이 일, 이 순간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 자체로서 삶은 이미 바른 길로 들어선 것이 됩니다. 내려놓고 쉬라고 해서 결코 머물러 버려.. 더보기
극칙공안무비/無比 스님/범어사 승가대학장 극칙공안 무비無比 스님/범어사 승가대학장 ​ ​ 다자탑전多子塔前 분반좌分半座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앉게 하다. - 벽지론 ​ 이 이야기는 에서 나온 것인데, 벽지론(支論)에는 다자탑(多子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다. 그대로 인용하여 뒷사람들의 참고가 되게 한다. ​ 왕사성에 한 장자가 살고 있었는데 재산이 한량없이 많고 아들과 딸이 각각 30명이 있었다. 때마침 장자가 멀리 나갔다가 어느 숲에 이르러 누군가가 큰 나무를 베는 것을 보았다. 가지가 무성하여 여러 사람이 끌어내어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 다음에 작은 나무를 베는 것을 보았다. 작은 나무는 가지가 없어서 한 사람이 끌어도 전혀 걸림이 없었다. 이 일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이 게송을 읊었다. ​ 내가 큰 나무 .. 더보기
소유할 것인가, 존재할 것인가.작가 정찬주 소유할 것인가, 존재할 것인가. 작가 정찬주 ​ ​ ◇ 마중물 생각 ​ 일찍이 독일의 철할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대학 시절에 문고판으로 읽은 기억이 난다. 그가 역설한 핵심을 나는 이와 같이 이해하고 있다. ​ 소유 지향적인 삶은 관형격이다. 무엇의 나다. 존재 지향적인 삶은 주격이다. 무엇이 나다. ​ 부처님도 어디에 종속되지 말고 자유를 향유하면서 자주적으로 살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부처님에게도 의존하지 말라고 했다. 오직 자신과 진리에만 의지하라고 했다. 게으르지 말라고도 유언으로 남겼다. 그저 여여하고 순일하게 정진하면서 주인공으로 살라고 당부했다. ​ 선사들도 그 어떤 욕망, 부(富), 심지어 대의명분이라도 노예가 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전했다. 좋은 말들.. 더보기
텅 빈 문 공문空門 .무비無比 스님/범어사 승가대학장 텅 빈 문 공문空門 무비無比 스님/범어사 승가대학장 ​ ​ 공문불긍출空門不肯出 투창야대치投窓也大痴 백년찬고지百年鑽古紙 하일출두기何日出頭期 ​ 텅 빈 문으로는 기꺼이 나가지 않고 창문에 가서 부딪치니 너무 어리석도다. 백년을 옛 종이만 뚫은들 어느 날에 벗어날 기약이 있으리오. - ​ 깨달음은 마음의 문제다. 마음은 공적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공문(空門)이라 한다. 마음은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것이라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단정 지어 표현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공적영지(空寂靈知)니 진공묘유(眞空妙有)하는 말로 그려보려 한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의 문으로는 들어가려 하지 않고 옛 종이인 경전만 읽은들 언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겠는가라는, 다소 조롱조의 시다. 그러나 이.. 더보기
이론으로 체계화한 간화선 / 김호귀 이론으로 체계화한 간화선 / 김호귀 -월암(月庵) 지음, 《간화정로(看話正路)》 (현대북스, 2006) 월암(月庵) 지음《간화정로(看話正路)》 (현대북스, 2006) 1. 《간화정로》의 의의 본 《간화정로》는 월암 스님(현 벽송선원장)이 그동안 연마했던 수행과 학업의 결과물로 2006년도에 출간된 책이다. 햇수로는 벌써 4년째 되는 동안 간화선에 대하여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며 실참을 하는 사람에게 많은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음은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사상의 탐구 및 실수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평자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먼저 지난 2008년 여름에 벽송사를 찾았다가 떠났을 때 저자가 일행을 통해서 건네준 《간화정로》와 《돈오선》에 대하여 아직 고마움도 표하지 못하였.. 더보기
대혜종고의 공안선 비판과 간화선에 지(知)1)의 문제 / 박재현 대혜종고의 공안선 비판과 간화선에 지(知)1)의 문제 1. 머리말 본 논문은 중국 선종사에서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간화선(看話禪)을 제출한 주된 원인과 간화선에서 핵심적인 사안 가운데 하나로 판단되는 지각(知)1)의 문제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1) 주지하다시피 지(知)는 공적영지(空寂靈知) 등 중국 선사상과 관련된 논의에서 핵심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그 중요성만큼이나 연구자들의 이해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견고하여 섣불리 번역하기 어렵다.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줄로 알지만, 논의의 진행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번역을 해야겠기에 일단 지각으로 번역했다. 다만, 굳이 현대어의 지각(知覺, perception)이라는 개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려는 의도는 없다 연구자는 일단 공안선(公案禪..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