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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지장신앙의 한국에서의 전개 지장보살의 형상 ​ 천관을 쓰고 가사를 입었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짓고 있는 형상이었다. 또, 왼손에 연꽃을 쥐고 오른손에 보주(寶珠)를 든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원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석장(錫杖) 짚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묘사되는데, 이는 에 근거한 모습이다. 이 경우 지장보살은 삭발한 머리에 석장을 짚고 여의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 지장신앙의 한국에서의 전개 현존하는 문헌에 보이는 신라 지장신앙과 그 신앙의 모임인 점찰법회(占法會察)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진평왕 때 원광(圓光)의 점찰보 개설 및 비구니 지혜(智蕙)의 점찰법회 개설에 관한 기록이다. ​ 원광이 수나라에서 귀국한 직후, 가서사(嘉栖寺)에 점찰보를 설.. 더보기
수선사·백련사 결사운동의 전개와 추이 수선사·백련사 결사운동의 전개와 추이 13세기 전후 불교계의 양상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신앙결사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주도세력의 출신성분이 이전과는 달리 대부분 지방사회의 향리층이나 독서층이라는 점이다. 이는 13세기 전후 시기가 고려 불교사의 전환기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가령 지눌과 요세의 경우, 각각 황해도 서흥군의 독서층과 경상도 합천의 호장층 출신으로서 불교계를 주도한 인물들인데, 이는 이전의 문벌귀족이나 왕족출신이 불교계의 주도세력으로 부각되던 단계와는 달리 지방사회의 향리층과 독서층의 자제들이 불교계의 중추세력으로 등장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지눌과 요세를 계승한 다음 세대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히 주목되는 인물들은 수선사의 2세 주법인 혜심(1178∼.. 더보기
조선 중후기는 한국불교사 격변기 조선 중후기는 한국불교사 격변기 동국대 불사연 ‘광해군과 인조시대 재인식’ 세미나서 제기 청허계와 부휴계 선사상 활기 이철헌 교수 “청허휴정 선사상 한국불교 사상 계승 발전” 고영섭 교수 “부휴계, 청허계 법통설 수용. 지눌나옹설과 연류가능성 지니는 이중적 구조 보여” “청허휴정의 선사상은 원효의 교학회통, 의천의 교관일치, 지눌의 선교일치, 혜근의 선교정토겸수, 기화의 유불도 회통으로 정리되어 지엄과 영관으로 이어져온 한국불교의 사상을 계승 발전했다.” 지난 1일 동국대 한국불교사연구소(소장 고영섭)가 남양주 봉인사에서 개최한 세미나에서 이철헌 동국대 경주캠퍼스 겸임교수는 이같이 강조했다. 이철헌 겸임교수는 이날 ‘청허계의 선사상과 법통인식’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청허의 사상은 문도들에 의해 계승되어.. 더보기
지식불교의 폐단 지식불교의 폐단 ​ 우리나라 불교신자의 신행태도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바른 교법을 모른 채 무조건 부처님에게 매달려 복을 비는 기복불교자이고, 또 하나는 불교에 대한 교리적 지식은 많으나 실천적 신행이 뒤따르지 않는 지식불교자들이다. 이러한 두가지 신행태도에 대해 불교의 자체평가는 약간 극단적인 데가 있어 보인다. 즉 대체로 기복불교에 대해서는 맹목적이고 미신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의 소리가 높다. 반면 지식불교에 대해서는 그 허위적 신행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거론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는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식불교도 기복불교 못지 않게 많은 비판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올바른 불교신행이란 머리로 이해한 교리를 가슴으로 받아들여 .. 더보기
‘절’이라는 명칭의 유래- ‘모례’의 우리말 ‘털레(집)’에서 기원 추측 ‘절’이라는 명칭의 유래 - ‘모례’의 우리말 ‘털레(집)’에서 기원 추측 스님들의 삶을 흔히 운수행각雲水行脚이라고 표현한다. 구름처럼 물처럼 정처 없이 다니며 진리를 구하고 사람들을 교화하는 일을 가리킨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곧 운수행각엔 사사로운 명리名利에 안주하지 않는 무소유와 자기가 아닌 모든 중생을 위해 헌신하는 대자비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구름과 물은 떠돌기에 앞서 맑다. 운수행각은 불교 초창기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부처님을 비롯한 제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걸식乞食과 유행遊行이었다. 나무 아래서 좌선하고 거리에서 설법했으며 하루의 발길이 끝나는 곳이 잠자리였다. 하지만 ‘우기雨期’라는 인도의 기후적 특성 때문에 일정한 거주지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장맛.. 더보기
사찰에선 왜 새벽 3시에 기상하나?- 도교 인시수련寅時修鍊 유래…농경사회 흔적 추측 사찰에선 왜 새벽 3시에 기상하나? - 도교 인시수련寅時修鍊 유래…농경사회 흔적 추측 템플스테이가 한국인의 대표적인 여가문화로 자리한 지 오래다. 고요한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스님들의 담백한 삶을 체험하는 일은, 세속에 찌든 마음을 닦아주고 달래준다. 다만 먹을거리 푸짐하고 놀이거리 풍족한 도시생활에 익숙한 일반인들이, 사찰의 단조롭고도 엄격한 일과를 따라잡기란 녹록치 않다. 더불어 아마도 ‘곤욕’의 백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에 참석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중도하차하는 행자들의 주된 불만은, 지나친 ‘조기早期 기상’의 어려움이라는 전언이다. 사찰의 하루는 통상적으로 새벽 3시에 시작한다. 다들 곯아떨어져 있을 시간에 눈을 부비며 부산하게 움직인다. 경내를 돌며 목탁소리로 대중을 깨우는.. 더보기
숭유억불 넘어선 조선불교 숭유억불 넘어선 조선불교 성리학 앞세운 핍박 500년 감내하며 미래 준비 ​ # 조선불교의 올바른 이해 ​ 조선 불교를 말할 때 대개 쇠퇴와 침체를 먼저 언급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불교가 지닌 사상과 문화, 의식 등 모든 방면에서 조선시대 불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대로부터 고려를 거쳐 발전을 거듭해온 불교가 현재에 전해지기까지는 조선시대의 매개적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왕조 건국의 이념을 성리학으로 내세우면서 건국 초부터 억불시책을 단행하였다. 불교 배척은 조선왕조 전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수많은 사찰과 승도는 통폐합되거나 환속당했고. 그나마 존속하였던 사찰과 승도는 양반관료제 사회 하에서 온갖 수탈을 겪어야만 했다. 배불시책은 건국 직후부터 시행되지 않았다... 더보기
한국 불교의 종파 / 위키백과 한국 불교의 종파 / 위키백과 삼국 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한국 불교에서는 때로는 새로운 종파가 성립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존의 종파들이 통합되기도 하면서 여러 종파들이 성립 · 발전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계율종이 큰 역할을 하였고, 남북국 시대와 고려 초기에는 선종의 9산이 성립되면서 5교9산이 확립되었다. 고려 중기에는 5교9산이 교종의 5교와 선종의 조계종 · 천태종의 5교양종으로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는 7종으로, 또 그 이후에는 선교 양종으로 폐합이 이루어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31본사제가 시행되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국불교의 고유성을 되찾는 운동이 전개되어 1962년에 대한불교 조계종이 발족되었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이외에도 대한불교 천태종 · 대한불교 진각종 등의 18종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