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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죄와 벌 / 도봉별곡 죄와 벌 / 도봉별곡 내 통증은 바람의 세기와 정비례하므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아파해야 하니 윤동주 님의 시는 한여름 마파람에 내리는 소낙비로 만든 지붕이 있는 집에 살고 싶은 내게는 운명적으로 기막히게 묵시론적이다 바람이 살랑거리던 날 오후 119차로 응급실에 실려 갈 때 가물거리던 의식은 언제 놓아버렸는지 모르겠고 아내의 고리눈에도 동요가 없던 나는 바람이 되어 달려온 두 딸의 눈물어린 눈에 비로소 시보다 좋은 술에 항복 선언을 했다 무조건 항복에도 불구하고 5, 6, 7 번 경추의 통증은 처음엔 오른 쪽 어깨 전체를 만 개의 바늘로 찌르다가 항복의 조건을 잘 지킨 대가로 어깨는 풀어주고 손끝의 통증을 가중시켜 긴 글을 쓰지 못하게 했고 술을 부르는 도봉산과의 교유를 막았고 하루에 1mm의 회복.. 더보기
의자 위의 편지 / 도봉별곡 의자 위의 편지 / 도봉별곡 낡은 신은 이미 죽었으니 가슴 속에 신이 새로 탄생한다면 성지가 따로 있던가 항상 길 위를 떠돌다가 먼 길 돌아와 앉은 안락의자 죽음을 재촉하는 발신자 없는 편지는 잔뜩 쌓여있는데 안락의자에 앉아 죽으면 안락사가 된다던 옛 시인의 말이 생각나면 바보가 되어 울컥하는 심사 뒤틀려 편지를 뜯을 생각 잊은 채 다시 길 떠날 생각에 희망은 잠시 회생한다 결단코 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나는 허황한 전설 속으로 떠나며 삶은 자유로운 유희라는 생각을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순례의 길에 선 채 태양은 무엇을 위한 희망이었던가 의심할 때 비로소 본능적으로 끝없는 암담함을 즐긴다 신은 암담함이었다는 것을 나는 신의 제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남겨놓은 의자 위에는 편지는 또.. 더보기
나의 창고 - 낱말 찾기 / 도봉별곡 나의 창고 - 낱말 찾기 / 도봉별곡 주역 한 권으로 세상을 다 담을 수 있다는데 나는 왜 주역 한 권조차 이해할 수 없는지 몸은 시작과 끝을 모르는 우주의 축소판이라는데 내 한 몸으로 작은 별 지구 하나 구원할 수 없는지 수많은 우리말을 사전 하나로 담는데 그것을 담지 못해 우리말을 별 헤듯이 뒤져도 적합한 시어 하나 찾지 못하는지 깨어남과 깨달음의 차이를 춘삼월 나르는 송홧가루 하나만큼 알았다 해도 쑥스러워 각성이라고 이름 붙이고 더 찾기를 포기해야 하는지 깨어남을 각성의 시작이라 하고 깨달음을 각성의 완성이라 해서 남도의 바닷가 모래를 찾아 헤매도 차마 만족하지 못하고 무장해제하고야 마는 나의 창고는 작아도 너무 작아 반성조차 부끄러운 봄날의 아침에도 청산도 유채꽃은 피고 지는데 *제2시집 에 수록 더보기
어머니와 수세미 / 도봉별곡 어머니와 수세미 / 도봉별곡 수세미는 일년생 풀이라 일 년의 수명뿐이겠네 수세미가 귀했을까 수세미를 보면 제사 때마다 볏짚에 재 묻혀 닦아 윤기 나던 놋그릇과 촛대, 술잔으로 기억 돌아가 어머니 생각에 눈물겹다 생뚱맞게도 영국 축구 손흥민의 토트남 팀 잘 생긴 감독 포체티노가 귀티나게 웃는 것을 보면 잘 닦아 윤기 흐르던 놋그릇 생각난다 열 세 번의 기제사 시제 때는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지 온갖 생일과 초사흘마다 쪘던 하얀 시루떡은 지금도 먹지 않는다 “엄마는 10대 종가 맏며느리여서 경제 걱정은 안 했지만 제사 치르다 아까운 청춘 다 보냈다” 어머님 말씀 한이 되어 50년이 지난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 제사 때 코배기도 안 비치던 숙모 배다른 형제라 얼굴을 내밀지 않던 숙부의 숙모 .. 더보기
질투는 힘의 원천 / 도봉별곡 질투는 힘의 원천 / 도봉별곡 1. 질투는 사랑의 힘 질투가 쌓여 바람이 되면 가을의 낮은 소슬하게 변하고 질투만 한 반달 떠서 그리움 희미해진다 그 치욕의 20대로 다시 돌아가기 싫어도 그런 사랑하고 싶었어라 다시 돌아갈 마음이라곤 전혀 없어진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옛사랑들 민낯으로 만나고 싶어라 여학생 하나 없는 법학을 전공하지 않고 사랑학도 나오는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어라 새 학기가 시작되어도 갈 수 없는 나라로 변한 슬픈 시절이 되어 개여울을 지나 비 온 후 썩은 나무 뒤 보름달 닮은 느타리버섯 따러 가는 막연함과 고개 들어 북쪽 하늘을 보는 절간의 오후에 이정환의 샛강 바람이 불어오면 산 너머 중학교 국어선생 떠오르고 늙은 여승 뒷바라지 학생의 비밀스런 질투를 모른 체 했다 그때 시.. 더보기
혁명가 허균, 자신을 중용한 선조와 광해를 똥이라 여기다 / 도봉별곡 혁명가 허균, 자신을 중용한 선조와 광해를 똥이라 여기다 / 도봉별곡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좋고 저승에서는 봄날의 바닷가에 핀 유채꽃만 처절하게 아름답다 사랑법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과 같이 똥 같은 것의 이로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랑 없이 사는 것과 똥 없이 사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도 같다 왕조를 지키지 못한 광해와 인조반정 후에도 조선을 왕의 나라라고 잘못 알고 있는 자들에 대한 경고다 홍길동전 그들만의 모국어로 쓴 혁명시는 사라지고 똥군이라 불리는 선조와 그 아들, 아들이 뽑은 신하들, 사대부들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백성은 소똥보다 못하지 않았는가 소똥은 거름에라도 쓰고 북국에서는 긴 겨울날의 땔감으로 유용하지 혁명가의 동생 초희, 許蘭雪軒(1563 ~ 1589)의 한恨도 세 가.. 더보기
해후邂逅의 변증법 / 도봉별곡 해후邂逅의 변증법 / 도봉별곡 1년 후 동백꽃 지고 동박새 떠날 때 만나자는 기약 헛되이 흘러간 50년 해후의 의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궤변의 소크라테스는 의의란 무엇인가? 라는 반문으로 대화를 시도하려 했을 것이다 모순을 내재한 변증의 치밀함 닮은 갑작스런 해후 앞에 깊어가는 내 나이 닮아 닳고 닳은 인연은 별과 혹은 바람과 관계없이 진화한다 만나고 헤어짐이야 한낱 무수한 세상사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한 갑자 거의 지난 후 다 닳아터진 얼굴과 얼굴 사이에서 만남과 헤어짐의 부등식 알아차리고서 정신 잃고 넘어져 몸 마음 흩어지고 베다라니 강* 건너 저세상 갔다 겨우 돌아와 새로 만나진 마누라 얼굴은 첫사랑 애들은 어릴 적 친구들 이자정회離者定會와 회자정리會者定離만큼의 대원칙과 만남의 방적식 따라 그.. 더보기
불놀이, 송강松江 정철의 노래 / 도봉별곡 불놀이, 송강松江 정철의 노래 / 도봉별곡 태초유업太初有業, 업은 태초부터 있었나니 나는 불이다 불은 우주의 하나임을 알았을 때 안도감 느꼈다 타고난 격정을 이기지 못 한 불놀이 타오르는 불에 성욕 느꼈을 때 신성모독이었을까 나는 불이고 너희는 물이다 불이 활활 타고 있다 너희는 아래로 흐른다 물이 위에 있고 불이 밑에 있어야 세상은 조화롭다 정반합의 변증법을 버려두고 방기한 채 버릴 것과 채울 것들 간발의 차이로 불태워져 성욕을 채우고 난 뒤의 허황 송강, 다혈과 편협의 불 율곡, 차분과 이성의 물 상선약수上善若水, 수화기제水火旣濟, 그러나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솟는 것 순혈과 다혈의 대립처럼 단호해져 변증을 버리고 돌아선 죄 훗날 불우로 남았다 지나가보니 격정을 이기지 못한 불놀이였어라 왕의 장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