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이야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불교 4대성지와 8대성지 (부처님 4대성지, 8대성지) 불교 4대성지와 8대성지 (부처님 4대성지, 8대성지) 불교, 부처님의 4대 성지 부처님의 4대 성지는 열반경에 부처님 말씀으로 정해진 것. 부처님이 입멸을 예고하자 슬퍼하던 제자 아난존자는 “부처님이 그리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묻는다. 그때 부처님이 불자가 친견해야 하는 곳으로‘자신이 태어난 곳 룸비니, 깨달은 곳 보드가야, 처음 전법을 한 곳 사르나트(녹야원), 입멸 쿠시나가르’ 4군데를 알려 준다. 이곳이 바로 부처님의 4대 성지 이 4대성지는 스님들이 발우공양할 때 외우는 게송 ‘불생가비라 성도마갈타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佛生迦毘羅 成道摩竭陀 說法婆羅奈 入滅拘尸那)’에도 부처님의 생애를 요약해 표현하고 있다. 위키백과 자료 (위키백과에서 퍼온 사진) 부처님의 8대 성지 4대성지와 함께.. 더보기 석가모니 당시 세속주의자들 철학 석가모니 당시 세속주의자들 철학 종교와 철학 〈사문과경(沙門果經)〉에는 석가모니와 아사세(阿?世) 왕의 대화가 그려진다. 여기서 아사세 왕은 석가모니 이전에 만났던 여러 철학자들을 짧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육사외도(六師外道)들의 면모가 여기에 등장한다. 그 가운데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舍欽婆羅)라고 하는 특이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곧 아지따 께샤깜발라(Ajita Keakambala)가 그이다. 이름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는 아마도 머리카락(kea)를 길게 길러 담요(kambala)처럼 몸을 휘감고 다녔던 사상가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의 별칭일 뿐이다. 그가 출가사문과 같은 고행자였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의 철학을 흔히 유물론자의 선구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더보기 불타관의 변천사(佛陀觀의 變遷史)-교리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불타관의 변천사(佛陀觀의 變遷史) -교리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6. 대승불교의 불타관 불멸 후 2세기에 근본교단이 상좌, 대중의 2부로 분열하기 시작하여 400년 간 소위 소승 20부로 분열하여 소승불교가 발달의 절정에 달한 불멸 7~8세기 이후에 이르러서는 용수, 제바, 무착, 세친 등에 의하여 대승불교가 흥기 하였다. 교단은 대, 소승으로 대립되었고 대승 내에 용수, 제바의 계통인 실상론계(實相論系)와 무착, 세친의 계통인 연기론계와 이대 조류가 되었다. 그러면 대승불교의 흥륭(興隆)을 인도불교사상사에서 보면 근본불교의 정립, 부파불교의 반입에 대하여 대승불교는 이 양지 종합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양지 종합의 위치에 있는 대승불교의 불타관은 근본불교와 원시불교와 부파불교등의 불.. 더보기 철제 발우와 고대 인도의 야금술. 왜 철제 발우 사용했을까? 철제 발우와 고대 인도의 야금술. 왜 철제 발우 사용했을까? 출가사문이 지닐 수 있는 개인 소유물은 각 종교마다 조금씩 달랐다. 불교 수행자들은 대략 일곱 가지에서 여덟 가지 정도였는데, 옷과 발우를 기본으로 해서 바늘과 지팡이, 치목(양치하는 나뭇가지), 허리띠, 지팡이 등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발도구 같은 것도 포함된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러한 율장의 기록들은 석가모니보다 훨씬 후대에 정해진 규정일 것이다. 이러한 도구들 가운데 몇 가지는 금속으로도 제작되는 것들이 있는데, 발우(鉢盂)나 바늘, 그리고 이발도구 등과 같은 것이다. 발우는 대체로 철이나 나무, 토기 등으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나무나 토기로 만든 발우는 수분으로 인해 쉽게 썩거나 파손될 수 있었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돌이.. 더보기 고대 인도의 암기법. 어떻게 경전 통째로 암송했을까? 고대 인도의 암기법. 어떻게 경전 통째로 암송했을까? 현재에도 인도인들은 뛰어난 암기능력으로 주목받는다. 어떤 인도 어린이는 힌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 정도는 통째로 외운다. 석가모니 당시에는 그 이전부터 전승되어 오던 방대한 문학들이 존재했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구전으로 전승되었다. 불경도 처음에는 그렇게 전승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석가모니 시대 이전인 베다 시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양상은 조금 달라진다. 베다 문헌들은 불경과는 달리 대체로 ‘한 구절도 어긋나게 암기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신의 계시 문학이었다. 따라서 당대의 베다 지식인들은 그 경전 구절을 정확히 암기할 수 있는 특정한 암기법을 고안해냈다. 문자가 없는 당시의 상황에서 경전을 통째로 암송한다는 것은 원래의 단.. 더보기 석가모니 당시의 화폐 / 펀치마크 주화 유통됐을 듯 석가모니 당시의 화폐 / 펀치마크 주화 유통됐을 듯 출가 전의 싯다르타 태자의 손바닥에서 금화와 은화가 반짝이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태자였다면 자신의 시종들에게 은전(銀錢)이나 동전(銅錢)을 주면서 장터에 있는 어떤 물건을 부탁했을지 모른다. 만일 이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담아낸다면 손바닥 위의 동전을 어떻게 표현해볼 수 있을까. 현재와 같이 동그란 모양의 동전 양쪽에 그림이 새겨져 있었을까. 불교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할 때 그 색(色)을 산스끄리뜨어로 루빠(rpa)라고 하는데 보통 ‘물질’ 또는 ‘형상’ 정도의 뜻으로 푼다. 이 말은 약간 다른 의미가 있는데, 기원전 4세기경 빠니니는 동전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은과 같은 귀금속 쪼가리를 마찬가지로 루빠(rpa)라고 불렀다. .. 더보기 불음주계의 발단 / 과음하고 실수로 부처님 걷어차 불음주계의 발단 / 과음하고 실수로 부처님 걷어차 〈마하승기율〉과 〈사분율〉 등에는 석가모니 당시 승단에서 음주가 금지된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어떤 스님이 음식 공양을 받는 자리에서 우연히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꽤나 술을 많이 먹었는지 나중에 그 스님이 숙취를 견디지 못하고 실수로 석가모니를 발로 걷어찬 것이다. 이것이 승단에서 금주를 결정한 계기였다고 적고 있다. 이 일화가 보여주듯이, 한때 불교는 술에 대해서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을는지 모른다. 불음주(不飮酒)의 규정이 생겨난 것은 술을 먹었던 어떤 제자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지 처음부터 당시 사회에서 유용하고 있었던 음주문화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율장이 다소 후대에 각색된 것이라면, 술에 대한 관용을 보여주.. 더보기 고대인도의 문자. 부처님 당시, 문자 없었을까? 고대인도의 문자. 부처님 당시, 문자 없었을까? 고대인도 문화사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는 천 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문자(文字)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원전 2천 년경 인더스 문명기에 사용되었던 인더스 문자가 아직 해독되지 않은 채 역사 속에 묻혀 버렸고, 다시 그 이후 인도에 문자가 등장한 때를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 비문의 문자가 나타난 때로 본다면, 고대인도인들은 최소 1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자를 경험한 적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 시간 속에 싯다르타가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싯다르타는 정말 무문자(無文字)의 사회 속에서 살았던 것일까. 우리는 아직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모른다. 인도 고전 속에는 고대 인도인들이 문자를 사용했을 법한 약간의 단서가 보이기는 한다.. 더보기 이전 1 2 3 4 5 ··· 37 다음